국책은행 IBK기업은행이 해외 네트워크를 잇달아 새로 짜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 바르샤바에 법인을 세운 데 이어, 올해는 9년 만에 베트남에 새 법인을 출범시킨다. 두 곳 모두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기지 이전이 활발한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은행 스스로의 외형 확장이라기보다, 해외로 나가는 중소기업을 따라가는 성격이 짙은 행보다. 공교롭게도 이런 투자는 올해 초 환율 급등으로 실적에 타격을 입은 시점에도 흔들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배터리·자동차 기업 뒤따라간 폴란드 법인
기업은행이 폴란드에 법인을 세운 배경에는 국내 전기차 배터리·자동차 업체들의 동유럽 진출 러시가 있다.
현재 폴란드에는 국내 전기차 배터리와 자동차 관련 업체 약 780개가 진출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폴란드 등 해외 거점 진출은 글로벌 시장에서 은행 자체의 파이를 늘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지에 나가 고군분투하는 국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해외 공장 건설을 뒤따라 협력업체들이 함께 진출하는 국내 제조업의 오랜 패턴을, 은행이 금융 인프라로 뒷받침하는 셈이다.
베트남 법인 9년 만에 신규 출범
베트남에서는 더 큰 폭의 변화가 준비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 4월 베트남 중앙은행으로부터 현지법인 설립 본인가를 취득했고, 오는 10월 출범을 목표로 IT·리스크·자금세탁방지(AML) 등 각 분야 직원 10여명을 현지에 파견해 시스템 구축과 현지 인력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법인장에는 하노이지점장을 거쳐 현재 베트남 설립 추진단장을 맡고 있는 박경일 본부장이 낙점됐다. 기업은행이 해외에 신규 법인을 세우는 것은 9년 만이다.
국내 중소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 중 하나인 베트남은 은행권 글로벌 사업의 핵심 축으로 꼽혀왔는데, 그간 하노이·호치민 두 곳에 지점만 운영해오다 이번에 법인 단위로 격상하는 것이다.
현지 진출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하이퐁 등 주요 공단 지역까지 영업망을 넓힐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런 재편은 조직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인도네시아 법인장 자리에는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수혈하기로 하는 등 글로벌 부문 전반에 쇄신 기류가 감지된다.
장민영 행장 체제에서는 글로벌사업그룹을 신설해 조직 위상 자체를 높였고, 최근 하반기 인사에서도 정광석 부행장을 글로벌사업그룹장에 앉혔다.
이런 해외 확장이 눈에 띄는 또 다른 이유는, 정작 올해 1분기 실적이 환율 변수로 흔들렸던 시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1분기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75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 줄었다. 지난해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에 따른 기저효과에 더해, 3월 말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환평가손실 911억원이 발생하며 비이자이익이 45.4% 급감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은행 본업인 이자이익은 조달비용 절감에 힘입어 오히려 반등했고, 순이자마진(NIM)도 지난해 4분기 1.57%에서 올해 1분기 1.60%로 올랐다. 유망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 성과로 유가증권 평가이익도 늘며 수익 다변화 전략이 일부 결실을 냈다는 평가다.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64조2000억원으로 시장점유율 24.4%를 유지했고, 고정이하여신비율(1.28%)과 대손비용률(0.43%)도 안정적인 흐름을 지켰다.
교보증권은 이런 흐름을 근거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매수 의견과 목표주가 2만7000원을 유지했고, DB증권도 목표주가 3만2000원을 제시하며 매수 의견을 냈다.
환율이라는 단기 변수로 순이익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폴란드·베트남 법인 설립이라는 중장기 투자를 멈추지 않은 것은, 본업 체력이 뒷받침되는 만큼 해외 네트워크 확장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이전이 배터리·자동차 같은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계속되는 한, 기업은행의 이런 '동행형' 해외 진출 전략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신규 법인이 조기에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갖출 수 있을지, 그리고 환율 변동성이라는 대외 변수를 얼마나 관리해낼 수 있을지가 향후 실적의 관건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