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커진 해외사업, 5년 만에 12배 성장…정책금융 재원 활용여력 키운다
"산업은행이 왜 해외에서 영업을 하느냐. 정책금융기관이면 국내 기업만 지원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첨단전략산업과 스타트업을 육성해 한국 경제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준다는 산업은행 설립 취지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이영록 KDB우즈베키스탄 행장 역시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런 의문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간명하다. "해외에서 돈을 벌어야 국내 정책금융 재원으로 쓸 수 있다."
이 행장 말마따나 산업은행 해외법인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성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산업은행 해외 법인과 지점의 순이익은 최근 5년간 12배 증가했다. 2020년 156억원이던 순익은 2021년 658억원, 2022년 1104억원으로 뛰었다. 지난해에는 2084억원을 기록했다.
본점이 해외사업 확대를 중점 과제로 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짙어지고 있다. 실제 산업은행 순이익 상당 부분을 해외법인이 견인하는 모양새라서다. 그중에서도 KDB우즈베키스탄은 단연 돋인다. 5년간 순익이 596% 늘어나며 해외 네트워크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에서 배운 12년, 우즈벡 전략에 녹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해외사업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KDB우즈베키스탄을 이끌 수장으로 산업은행이 2년 전 이 행장을 낙점한 배경에는 글로벌 경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 행장은 1991년 산업은행에 입행해 국제금융부, 베이징·광저우 지점, 해외사업실을 거친 글로벌 금융통이다.
특히 중국에서 12년을 보내며 고도성장을 눈앞에서 경험했다. 이 행장은 "중국은 '시장을 내줄 테니 기술을 가져오라'는 전략으로 성장했다"라며 "우즈베키스탄도 개혁·개방을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는 점에서 유사하다"라고 진단했다. 시장 규모는 중국만큼 크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라는 점에서 잠재력은 충분하다고도 평가했다.
중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조직 운영은 현지화와 동기부여에 방점을 찍었다. 직원 교육은 은행법, 회계, 엑셀 같은 기초부터 분야별 전문 과정까지 단계별로 체계화했다. 매년 우수 직원을 뽑아 한국 본점 연수 프로그램(GFC)에 파견해 한국 문화도 체험하게 한다.
현지 직원을 경영위원회에 참여시켜 의사결정 과정에 함께하게 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 행장은 "직접 경영에 참여해보는 경험이 직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성과주의 보상체계도 분명하다. 매년 평가를 통해 성과와 보상을 연동하고 영업 직원들이 목표와 리워드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짰다. "성과와 보상은 반드시 함께 간다"는 게 이 행장의 원칙이다.
◇현지 직원 경영위원회 참여로 동기부여…중국 변수는 위기이자 기회
우즈베키스탄 금융시장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국영은행이 절대적이었지만 최근엔 이들도 영업 강화에 나섰다. 금리 경쟁과 고객 쟁탈전이 날마다 벌어진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금융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영은행 9곳이 전체 점유율 65%를 차지하는 '고인물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국영은행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행장은 "민영화 추진 기조에 따라 은행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다시 보면 경쟁환경이 정상화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향후 시장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고 했다. 고객을 빼앗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추가로 확보할 기회도 있다는 의미다.
중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지난해 11월 중국수출입은행이 우즈베키스탄에 사무소를 열었다. 영업점으로의 진출 의지도 보인다. 중국의 금융 확장 전략을 지켜봐 왔던 이 행장은 "중국은 자본을 가지고 기술을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을 넓히는 방식으로 해외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라며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의 진출은 금융수요 확대라는 기회를 만든다. 동시에 중국계 은행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도전이기도 하다. KDB우즈베키스탄은 중국 기업들과의 협력 및 중국계 은행과의 경쟁 모두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기술과 자본이 우즈베키스탄 시장 상륙할 조짐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이 행장은 KDB우즈베키스탄의 가장 큰 무기로 대주주인 산업은행 존재를 꼽았다. 외국계 은행으로서 빠른 의사결정과 신속한 서비스, 영업 마인드를 갖춘 직원들도 강점이지만 그 기반에는 산업은행이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금융은 신뢰가 전부"라며 "산업은행이 대주주라는 사실 자체가 '이 은행에 맡기면 안전하다'는 인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행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남은 기간 그는 '트레이드마크 전략'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 행장은 "남들과 같은 상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라며 "신디케이티드론, 이슬람 금융 같이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 KDB라는 이름이 곧 경쟁력이 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행장의 메시지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산업은행 해외법인은 왜 필요할까. 이 행장의 대답은 변함없다. "산업은행은 위기 때마다 기업을 지켜내는 정책금융기관이다. 해외에서 돈을 벌어야 국내 정책금융 재원으로 쓸 수 있다. 그게 우리가 해외에서 뛰는 이유."